[BOOK] 오르부아르 + 와르르르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콩쿠르상 수상에, 숨 돌릴 틈 없이 페이지가 넘어가는 희비극이라니. 어여 읽어야지 하면서도 첫 장, 그 몇 줄이 그렇게 안 넘어가더라. 희한하게. 어찌 보면 2차 세계대전보다 더 흥미로운 게 1차 세계대전과 그 이후이고, 그래서 읽어야겠다 싶었는데 말이다. 물론 1차 대전 자체가 이 소설의 메인 골격은 아니지만.

 

게다가 생경한 제목도 입에 안 붙고. 읽으면서도 '오부르아르'인지 '오루부아르'인지 '오르브아루'인지 헷갈리다 다 읽을 즈음에야 외웠다. 결국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고 뜻을 찾으려고 보니 Au revoir라고 쓰여있잖아! 원제가 Au revoir là-haut인가 본데 그래서 소설 시작 전에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는 편지글을 인용한 거였구나. (제2 외국어 배워봤자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다. 그래도 '오르부아르'라는 음차는 너무한 거 아닌가.)

 

그렇게 근 2년은 묵혀뒀다 드디어! 읽었다(라고 하기엔 벌써 두 달은 더 지났구먼). 한두 페이지 넘어가니 그 때부터 정말 술술술 미친 듯이 읽히더라. 광고가 과장이 아니었어! 새벽 3, 4시까지 읽고, 지하철에서도 읽고. 전자책이라 눈이 빠질 것 같았지만 암튼 2/3 정도까지 숨 돌릴 틈 없이 몰아쳐서 읽었다. 특히 앙리의 '회심의 일격'에선 현실 웃음이 터져버렸다(책 읽다 나도 모르게 웃음 터진 게 언제였더라?). 아 이런 재치, 너무 좋아. 역시 큰 사업을 하려면 사람이 평정심과 그에 따르는 치밀함에 구색도 갖춰야지 암암.

 

후반부가 다소 헐거워지면서 엔딩이 초현실과 부조리의 정점을 찍으려는 듯 사알짝 억지가 아닌가도 싶지만, 진지한 것과 심각한 것을 혼동하지 말라는 얘기처럼 오랜만에 재미진 책을 만났다. 프랑스에서 곧 영화도 개봉한다고. 트레일러를 보니 호텔신은 제법 휘황한데 인물들은 상상과는 사뭇 다르구먼. 내 머릿속 에두아르와 알베르는 이렇지 않았는데. 포스터에 말대가리가 없는 것도 아쉽고. 한국 배급사도 있던데 개봉은 언제 하려나? 

 

오르부아르 : 프랑스 판 영화 포스터

 

 

 

<이렌> 피에르 르메트르

르메트르의 장편 추리 소설. <오르부아르>를 신명 나게 읽은 참에 흥미가 돋아 읽었다. 까미유 형사 시리즈로 르메트르의 첫 소설인데 <알렉스>처럼 '이렌'이라는 제목이 동력이 되어 계속 극을 추리해 가면서 읽다가 종국엔 '이런'이라는, 마음속 탄식이 터져 나왔다. 근데 생각해 보면 괜찮은 제목이자 극적 장치다. 등장인물이나 내용 전개에서 여타 형사-추리물과 별다를 것 없지만 이야기 자체가 트위스트였다고 할까. 굳이 형사물로 구분할 필요도 없을 듯. 소설로 읽기엔 <오르부아르>가 확실히 더 낫긴 하다.

 

 

<새까만 금발머리의 소년> 안드레아스 그루버

제목부터 오묘한 트위스트라 끌리긴 했는데, 그렇다고 내용에 엄청난 기대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적정 수준의 재미는 보장되리라는 예상으로 읽었고, 예상은 잘 들어 맞았다. 결말이 다소 김 빠진 감이 있으나 역시 예상했던바. 덕분에 내 사랑 에드워드 고리의 책들을 다시금 꺼내보게 한 책. 

 

 

<너는 모른다> 카린 지에벨 

사실 별다른 기대 없이 킬링타임용으로 좋겠다는 생각에 골랐는데, 탁월한 선택이었다. 재미지게 술술 읽혔다. 수사관들이 냉철함이라곤 1도 없이 (좋게 말해) 인간적인 게 속 터지긴 했으나, 그것이 극을 끌어가는 한 축이니 뭐 어쩌랴. 그런 만큼 결말도 의외로 큰 물음을 던지는 것이 제법 맘에 들었다.

 

 

이상 탐정물 비스무리한 소설을 내리읽었는데, 이제 탐정소설이라 하면 심리스릴러-추리물이 대세라 등장인물이나 이야기의 얼개가 죄다 비슷비슷. 두 달이나 지나 생각하니, 당시에도 그랬지만 <오르부아르> 빼곤 무슨 소설을 어떤 순서로 읽었는지, 등장인물이며 온통 가물가물. <그림자 소녀>, <비밀 친구>는 읽다가 덮어 버렸다. 시간 보내기에 더없이 즐거웠으나, 이 이상 연달아 읽다가는 아예 장르적 감흥을 잃어버릴 것 같아 나머지 책들은 일단 보류. 

 

 

 

<라쇼몬>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위의 책들을 읽으면서 중간중간 리프레쉬 하려고 읽었다. 예전에 읽었을 땐 '이게 뭐야...'라는 생각이었는데, 심리스릴러의 대홍수 속에서 차근차근 읽다 보니 오히려 가뭄에 단비처럼 느껴지더라는. 그야말로 에스프레소!

 

 

<동급생> 프레드 울만 

그놈의 '마지막 한 문장' 광고 문구 때문에 읽으면서도 계속 그 생각으로, 본의 아니게 추리물 읽듯 읽어버린 소설. 나르치스-골드문트, 데미안-싱클레어처럼 콘라딘-한스의 서글프면서도 아름다운 인생 이야기이자 광고가 소설의 감흥과 격조를 망쳐버린 케이스.

 

 

<셰익스피어 극장> 안노 미쓰마사(그림) | 마쓰오카 가즈코(글) 

셰익스피어 입문서로는 그만. 그림책으로는 편집이 아쉽다.

 

 

 

갑자기 시간을 쪼개가며 이책저책 몰아쳐서 읽어대다 <최후의 유혹> 슬로우 리딩으로 독서 대장정 마무리. 뜨개질 책 보면서 정신 상태를 추스르고 나니 다시 추리 소설이 당기네.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