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군주론. 파리대왕. 종이책으로의 회귀.

또다시 계획에 없던 소비를 하고 말았다. 펭귄 북스 영문판 충동구매. 중고매장에서 정말 개념 없이 집어대다가 겨우 정신을 수습하고 4권으로 추렸다.

 

그 중 <군주론>은 순전히 값이 싸서 구매했다. 무료 ebook이나 PDF가 넘쳐나지만 읽으려니 눈이 아파서... 프린트하느니 멀쩡한 종이책을 사는 게 낫다는 논리로 합리화. 이런 식으로 사는 게 한둘이 아니다. 부피를 줄이고자 웬만한 책은 다 버리고 전자책으로 갈아타려 했건만 노안에 발목 잡힐 줄이야. 서럽다.(이게 다 망할 직업병 때문이다!) 이러니 버리고 온 책들이 아쉬운 생각이 자꾸 들지. 그리 당당하고 과감하게 버려댔건만 다시 종이책으로 회귀하고 있으니. 이런.

 

<군주론 The Prince>은 '클래식'답게 번역본이 여럿 있다. 번역에 대한 의견도 분분한데 이탈리아어에 무지한 나로선 뉘앙스나 어휘, 문장 구조에 감이 없으니 남의 다리 긁는 얘기 같기만 하다. 펭귄 북스는 조지 불 George Bull 번역본을 절판하고 2009년부터 팀 팍스 Tim Parks 번역본을 출간하고 있다. 팍스는 소설가이기도 한데 부커상 후보에 2번 올랐고, 1981년 이후로 이탈리아에 살면서 밀란 IULM 대학에서 번역을 가르치고 있다. 그야말로 이탈리아-영어 번역의 대가. 다소 윤색했다는 평도 있지만 영어권 독자 상당수가 팍스가 번역한 <군주론>을 호평한다. 마키아벨리의 문체를 이야기할 때 흔히 '헤밍웨이 스타일'을 언급하는데, 1961년 이래로 불의 번역은 마키아벨리의 군더더기 없고 맹렬하면서 냉소적인 산문과 공화주의를 품위 있게 표현했다는 평이다. 표지부터 분위기가 다르지 않나.

 

 

L: PENGUIN CLASSICS DELUXE EDITION Translated by Tim Parks

R: PENGUIN CLASSICS Translated by George Bull

 

 

 

And let it here be noted that men are either to be kindly treated, or utterly crushed, since they can revenge lighter injuries, but not graver. Wherefore the injury we do to a man should be of a sort to leave no fear of reprisals.  - N.H. Thomson

 

Upon this, one has to remark that men ought either to be well treated or crushed, because they can avenge themselves of lighter injuries, of more serious ones they cannot; therefore the injury that is to be done to a man ought to be of such a kind that one does not stand in fear of revenge.  - W. K. Marriott 

 

In short, men must either be flattered or eliminated, because a man will readily avenge a slight grievance, but not one that is truly severe. Hence, the offense done a man must be of the kind that cannot incur vengeance.  - Peter Constantine 

 

And here it has to be noted that men must be either pampered or crushed, because they can revenge for small injuries but not for grievous one. So any injury a prince does a man should be of such a kind that there is no fear of revenge.  - George Bull

 

In this regard it’s worth nothing that in general you must either pamper people or destroy them; harm them just a little and they’ll hit back; harm them seriously and they won’t be able to. So if you’re going to do people harm, make sure you needn’t worry about their reaction.  - Tim Parks  

 

예뻐라 하지 않을 바엔 부숴버려야 한다는, <군주론>이 뇌리에 꽂힌 계기가 된 구절. 팍스가 쓴 역자 후기에서 16세기 이탈리아 산문을 영어로 옮기는 번역가의 노력이 고스란히 느껴지는데 현대 이탈리아어로 쓰인 <군주론>도 뉘앙스가 천차만별이란다. 이 외에도 다른 출판사의 번역본이 더러 있는데 유통까지 포함하면 사실 펭귄 랜덤하우스가 다 해 먹고 있다. 어쨌든 나는 원전을 모르니 영어 공부하는 셈 치고, 값도 저렴하니 늙어가는 내 눈을 위해 조지 불 버전을 구매했다(학구적인 고민과는 거리가 멀구나). 

 

이런 의미에서 <파리대왕>도 구매해 버렸다. 펭귄 20세기 필독서(라 할 수 있는) 시리즈로 딱 본문만 실려있다. 표지도 최근 딜럭스 버전보다 마음에 든다. 딜럭스 버전은 이름답게 스티븐 킹이 소개글도 쓰고, 스터디 가이드도 수록되어 있어 쪽수도 많고 비싸다. 드랍 캡스는 그래픽 이미지로 보니 영 어설퍼 보이는군. 하다 만 숙제마냥. 책 종이 3면이 다 노랑이라 아주 귀여운데(디스토피아 소설 주제에). 텍스트야 영국 소설이니 판본마다 똑같다. 그나저나 '펭귄 20세기 책' 20권 중 읽은 게 별로 없구먼. 

 

 

PENGUIN GREAT BOOKS OF THE 20TH CENTURY

Paperback | Oct 01, 1999 | 192 Pages

 

 

PENGUIN CLASSICS DELUXE EDITION

Foreword by Lois Lowry

Introduction by Stephen King

Contribution by E. M. Forster and Jennifer Buehler

Paperback | Nov 15, 2016 | 336 Pages

 

 

PENGUIN DROP CAPS

Hardcover | May 07, 2013 | 256 Pages

 

 

<유혹하는 글쓰기> 한정판의 유혹을 뿌리치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외서 구매라니. 책장에 꽂아두니 또 즐겁긴 한데 당분간 책 그만 사리라. 있는 책, 마음에 드는 책 다시 읽으면서 꼭꼭 되새김질이나 하자고. 잊어버리지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