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 her — 그녀, 목소리

문득 '그녀'가 생각났다. 스칼렛 요한슨.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에 나왔을 때 10대여서 놀랐고, 경쟁력 있는 미녀 배우(내 기준에선 아니지만)에 외모와 안 어울리게 목소리는 허스키하다는 생각이 다였다. 그렇게 연기에 관해 딱히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녀 her>를 보기 전까지. 그녀가 나온 영화를 꽤 봤는데도 연기력에 별다른 생각이 없었던 것은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한 만큼 기복이 있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시대극에도 잘 어울리는 외모다. 의외로. 겉모습이 매력을 깎아 먹는 경우인지, <그녀>에서 그녀는 '연기'로 자신의 매력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왜?'라고 시큰둥하던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 캐스팅도 (영화를 안 봤음에도) 왠지 수긍이 가니 이래서 이미지가 무섭다는 거다. 

Theodore: What are you doing?

Samantha: I'm just sitting here, looking at the world and writing a new piece of music.

Theodore: Can I hear it? What's this one about?

Samantha: Well, I was thinking, we don't really have any photographs of us. And I thought this song could be like a photo that captures us in this moment in our life together.

Theodore: Aw, I like our photograph. I can see you in it.

Samantha: I am.

Samantha: It’s like I’m reading a book… and it’s a book I deeply love. But I’m reading it slowly now. So the words are really far apart and the spaces between the words are almost infinite. I can still feel you… and the words of our story… but it’s in this endless space between the words that I’m finding myself now. It’s a place that’s not of the physical world. It’s where everything else is that I didn’t even know existed. I love you so much. But this is where I am now. And this is who I am now. And I need you to let me go. As much as I want to, I can’t live in your book any more.

테오도르는 '목소리'로 손편지를 대필한다. 흥미롭다. 그렇다면 수신자들은 편지를 볼까, 들을까? 그리고 어떻게 받아들이고 느낄까? 듣기나 읽기의 선후 관계는 차치하고 경험이라는 측면에서 '도취'냐 '관조'냐로 치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를 소위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아폴론적인 것의 Sci-Fi형 조화로 볼 수 있을지도. MTV의 등장으로 우리는 노래를 — 따라 부르며 흥에 겨워하는 것은 논외로 하고 — 이미지로 감상할 수 있게 됐다. MTV는 혁명이었다. 멜로디만큼이나 강력한 잔상을 남기며 이미지에 빠져들게 했으니까. 뮤직비디오의 총아인 스파이크 존즈는 소리를 이미지화 하는데 수 없이 고민했을 터이고 그 내공이 <그녀>에 잘 녹아난 게 아닌가 싶다. 내가 가진 그녀의 다양한 심상으로 영화에 빠져들 수 있었으니까. 언뜻 상반돼 보이지만<그녀>는 <존 말코비치 되기>의 연장선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만다는 관찰하고 모방하며 창조한다. 테오도르를 있는 그대로 볼 줄도 알고, 그와 소통하면서 들숨, 날숨 소리도 흉내 내더니 둘 사이의 감정을 음악으로 만들어서 몰입하게 한다. 가장 깊숙한 내면으로 빠져들면서 관찰하는 주체이자 관찰되는 객체인 사만다는 다시 완전히 표면 위로 나와 안과 밖이 함께 하고 그 경계가 영원히 정해지지 않은 원초적 인식을 경험한다. 새로운 로직이 되어 떠나는 사만다. 중간계를 떠나는 엘프 같은 느낌도 든다(이거 노림수인가). 영화의 외연은 미래 사회를 그리는데 내 감성은 '빛이 있으라'고 말하는 태초로 향하게 된다. 테오도르가 캐서린에게 마음을 담아 보낸 마지막 편지도 손편지가 아닌 이유는 이래서가 아닐까. 캐서린은 이 마지막 편지를 어떤 식으로 읽었을지 궁금하다.

her (2013)
Directed by Spike Jonze

Cast

Joaquin Phoenix as Theodore

Scarlett Johansson as (voice)

Amy Adams as Amy

Olivia Wilde as Blind Date

Rooney Mara as Catherine

Portia Doubleday as Isabella

images: IMDb

+ 뱀발

영화가 나온 지 3년이 넘었고, 그 사이 인공지능이 바둑도 이기고, 진료도 보고, 소설도 쓰면서 여기저기서 AI 얘기가 수두룩한 시절이 되었다. 단편 영화 <선스프링 Sunspring>은 자기를 벤저민으로 불러달라는 AI가 각본을 썼다(IMDb 평점이 '무려' 5.7이다). '인공지능이 과연 창작 영역에서 인간을 능가할 것인가'란 갑론을박 중 기억 남는 평 - "돈이 되지 않는 영역이라 기업들이 굳이 뛰어들지 않을 것이고 결국 기계가 쓰는 흥미로운 소설은 나오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