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 아이 캔 스피크 —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아이 캔 스피크> 관람.

 

사실 추석 때 볼까, 하는 얘기가 나왔으나 흐지부지 되었는데 무엇보다도 눈물 쏟는 영화는 이제 볼 자신이 없어서다.

장르 불문, <가디언즈 오브 더 갤럭시>나 <앤트맨> 같은 마블 히어로물을 보면서도 눈물이 고이는 마당인데(이거 무슨 병인가. 근데 글썽이게 하는 포인트가 귀신같이 있다고!) 대놓고 울리려는 영화라니. 아무튼, 극장에서 눈물콧물 범벅되는 난감한 상황이 싫어진 게 꽤 된듯하다. 주위가 신경 쓰이기도 하지만, 아니 내가 이렇게 울다니, 라는 스스로에 대한 당혹감이 만만치 않아서다(난 원래 눈물 없는 인간이었다고). 울고 나면 뒷수습도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안경이라도 쓰면 렌즈에 눈물 자국이 덕지덕지. 정말 짜증 난다.

 

그러다 결국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소재를 이미 알고 있었기에 단단히 채비했다. 휴지도 챙기고 손수건도 챙겼다. 어차피 안경 쓸 거니까 화장 따윈 필요 없다(분명 많이 울 테니 쌩얼이 낫지).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어느덧 분노와 슬픔, 애잔함으로 줄줄줄. 진주댁(우는 모습)이 꼭 나 같으려나. 사실 장르적 클리셰 등 서사면에서 잘 짜인 '세련된' 영화라고 할 순 없다. 헨젤과 그레텔인 양 동생을 졸졸 쫓아갔더니 할머니 집이더라, 든지 의회에 울려 퍼지는 "how are you?"라든지. 의회 대목에선 솔직히 다소 오글거리면서 '설마... 아니겠지, 아닐 거야, 이것만은...'이라고 마음속으로 외치기도. 그러나 '고작' 이런 점을 들어 이 영화를 범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옥분 할머니가 I can speak라고 말하게 되는 여정은 거창하지 않지만 진솔하게, 무겁지 않지만 절절하게 가슴을 울린다.

 

 

 

여기에 초점이 맞춰지면 시장 재개발 건도 플롯에 구멍 — 맥거핀 투척과 증발 — 이라고만 볼 순 없다. 적어도 옥분 할머니가 마냥 고군분투하지 않을 테니. 그렇다고 모두 힘을 모아 맞서지도 않을 테고, 이권을 챙기려는 자들의 아귀다툼도 여전할 것이다. 할머니의 여정을 함께 하며 우리는 시장, 구청, 정부와 국제 사회의 인간 군상을 통해 시민의식이 어떻게 연대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족발집 혜정이 내민 달러는 한 끼 식사값도 안 되는 푼돈이지만 우리는 그 값어치를 액면가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무던한 극영화적 방증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따숩다. 

 

 

 

송곳 같은 시선으로 현실을 해부하는 영화는 때론 그 날카로움으로 견디기 힘들 때도 있다. 당장 <은밀한 가족 Miss Violence>이 생각나는데, 작품성과 시의성 — 알레고리와 메세지 — 의 문제는 차치하고 그 냉기에 절로 몸서리치게 된다. <아이 캔 스피크>는 '무난하다'는 것이 영화 감상의 미덕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문희 여사의 연기는 영화적 MSG를 적절히 상쇄해주며 일상에서 만날 법한 인물을 통해 사회 문제를 돌아보게 한다. 아픔을 마주하고, 사회적 약자를 보듬고자 하는 작은 용기를 환기한다면 이 보다 더 강력한 메시지가 있을까. 설령 눈물 좀 뺀다 한들. 

 

영화관에서 처음으로 펑펑 울어댔던 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 본 (이제 내용은 생각도 안 나는) <퍼펙트 월드>였다. 학원 가기 전에 엄마랑 봤다가 눈이 퉁퉁 부어서 갔던 기억이 있다. 물론 영화 보고 와서 그렇다는 말은 안 했고. 그러고 보니 내가 아주 눈물이 없던 인간은 아니었구먼(나름 소녀감성 시절이기도 했고). 

 

오랜만에 울고 나니, 이제는 나도 말할 수 있다. 눈물이 많아진 걸 쑥스러워 말자. 대신 영화관 갈 땐 손수건 꼭 챙겨야지. 뭘 모든 어디서 터질지 모르니.

 

 

 

 

+ PS.  

얼마 전 할머니 한 분이 돌아가셔서 이제 위안부 생존자는 전 세계에 34명뿐이다. 일본의 자금 압박으로 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 등재가 무산되었다는 뉴스도 있었다. '우리가 다 죽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 같다며 오래오래 살아야겠다'는 옥분 할머니의 말이 자꾸 생각난다.

 

 

아이 캔 스피크 (2017)

감독

김현석

 

출연

나문희 - 옥분 역

이제훈 - 민재 역

염혜란 - 진주댁 역

성유빈 - 영재 역

이상희 - 혜정 역

손숙    - 정심 역

김소진 - 금주 역

박철민 - 양팀장 역

정연주 - 아영 역

이지훈 - 종현 역

이대연 - 구청장 역

최수인 - 어린 옥분 역

이재인 - 어린 정심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