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끝자락. 위험한 책들. 등등.

이럴수가...벌써 2016년이 다 갔다니. 

정말 세월에 날개가 달렸나...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오뒷세이아>

나는 책 읽으면서 웬만하면 책 탓(?)을 하지 않는다. 특히 철학, 과학 번역서는 원문도 어렵겠거니와 다루는 내용 자체도 쉬운 건 아닐 테니 역자나 편집자도 얼마나 고민하며 책을 냈겠는가 말이다.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씹고 뜯으며' 읽어보자는 게 내 지론이라면 개털 같은 지론인데...

 

아, 이 책은 정말 3분의 2지점에서 덮어버렸다. 아니! 이 시리즈의 출판 의도가 '그림과 함께, 쉽고, 재미있게'라며. 여기서 '쉽게'라는 건 믿지도 않았지만, 그럼 '재미'라도 줘야지! 아니, 삽화를 넣은 의도대로 '보는 철학'이기라도 해야지! 원래도 악명 높은 <계몽의 변증법>이지만 한글, 아니 문장 자체를 이해 못 하겠다. 「노래 5 세이렌」까지 인내심에 인내심을 발휘해서 읽다가 덮어버렸다. 그래도 무는 썰겠다고 (그리고 반납일을 지키기 위해. 나는 규칙을 준수한다고.) 투지를 불태우며 완독은 했다. 근데 또 세이렌 이후로는 그럭저럭 잘 읽히데. 각 챕터에서 모험을 요약한 부분(원전이 다른 것으로 기억한다.)은 괜찮은데 내용 설명만 들어가면 정말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전에 이 시리즈를 몇 권 휘리릭 본적이 있는데 내용은 둘째 치고, 나야 모양새에 약한 인간이니까 편집과 판형, 지질이 다 맘에 들어서 소장하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삽화도 발주 형식이 아니라 책의 기획과 저술 단계에서부터 공동 작업으로 진행했다고 하는데 읽다 보니 낚인 기분이랄까. 완독한 건 시리즈 중 이 책뿐이라 조심스럽지만. 하여튼 구매는 포기. 나머지 시리즈나 마저 읽어봐야겠다. <헤겔의 눈물> 재밌을 거 같은데(라는 생각을 해보지만...)

 

결론은 타자성을 제거하고 승리한, 돌아온 권력자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다. 최초의 부르주아 오디세우스가 신화와 맞서는 여정에서 이성이 어떻게 광기가 되고, 전도된 가치를 생산하는지 고찰. 오늘날 이성의 척도라는 교육이 새로운 신화로 자리매김한 것에 비추어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저자는 베를린자유대학에서 <계몽의 변증법>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는데, 원문을 원래 의.도.적.으.로 이리 쓴 건진 모르겠지만, 내용도 어려운데, 문장이 거의 구(句)의 나열로 이루어져 있어서...하...어디까지가 '주어'인지를 모르겠...내가 국어 공부를 다시 해야 하는 건지. 이리 메치나 저리 메치나 모르긴 매한가지라면 그냥 <계몽의 변증법>을 읽어봐야겠다는 용기를 낼 수 있긴 했다. 

<라캉, 끝나지 않은 혁명>

현대 철학, 특히 프랑스 철학은 너무 난해하다. 뭐 철학의 테두리 안에선 쉬운 게 이상한 거지만. 누구나 여러 가면을 쓰고 그래서 존재한다는 얘기처럼, 현대 철학은 너가 왜, 어떻게 여기에 던져졌는지 너가 알아보라며 실오라기 하나 쥐여주곤 미궁에 밀어 넣는다.

라캉 철학, 엄밀히는 정신분석이라고 해야 하나. 예전에 필요 때문에 뉴욕 라캉 세미나도 찾아보고, <에크리>도 봤다가, 당연히 읽으려고 본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라캉은 더 알아선 안 되겠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공자도 아닌 내가 프로이트 훑기에도 가랑이 찢어지는데 라캉이라니. 왠지 위험한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이 책은 우선 얇아서 읽기 괜찮다. 대담집이고. 그렇다고 쉽다는 건 절대 아니다. 윤리와 정치에서 라캉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두 대담자는 각자 다른 태도를 보이는데 개인적으로 루디네스코식 접근에 수긍하지만, 바디우 얘기가 좀 더 흥미롭긴 했다. (이것도 무의식의 욕망인가.)

 

우리가 무의식의 구조들에 사로잡혀 있긴 해도, 자신의 욕망에서 물러서지 않는 지점에 도달한 주체의 경험에 방점을 찍는다면, 라캉은 해방의 사상가로 나타납니다. ...해방이 '법'을 비틀고 거기에 예외를 만드는 그런 움직임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입니까? ...사회 전체의 느닷없는 혁명이라는 관념은 의미가 없어요. 이런 관점에서 보면 라캉이 총체적 혁명이나 '위대한 저녁'을 믿지 않는 보수주의자의 입장을 고수하는 것은 옳은 일이죠. 그렇지만 그는 주체의 실천적 해방을 독단적으로 폐기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로 단호하게 비판합니다. (52)

 

정신분석은 과학이 아니라고 비난받고, 심리학, 크게는 과학과 대립각을 세우기도 한다. 인간의 마음을 실험과 통계로 양화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이해된 것인가?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의 마음도 컴퓨터 프로그램과 다를 바 없다던 인지과학에서도 이젠 마음과 몸, 환경을 하나의 유기체처럼 보는, 뇌를 넘어서는 체화된 인지 연구가 활발하지 않은가. 이쯤 되니 육체를 경멸하는 자들에게 한 말씀 하신 그분이 생각나는데 안 그래도 역자 해제에 소개된다. 

 

여태껏 내게 희곡이든, 소설이든, 영화든, 옷이든 뭐가 됐든, french가 들어가면 'hot'하지, 'cool'한 느낌은 아니던데 역시 라캉도 그 사상도 hot하네. 자꾸 궁금증을 유발하니 이만하면 라캉 입문서로 괜찮다고 해야겠지? 그나저나 여기저기 자꾸 손을 뻗치니 문젠데... 뭐, 내가 궁금하다는데 어쩔 것이여. 깊게 파기 위해서는 넓게 파야 한다고 스피노자도 말했지 않나. 깊게 파는 건 모르겠다만 넓게 함 파보지 뭐. 나의 뉴런들아, 체세포들아, 힘을 내자.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수구초심인지, 니체만한 게 없다. 우울할 때, 진 빠질 때, 열 받을 때, 멍 때릴 때 등등. 근데 '차라투스트라의 서설'이 이렇게나 슬펐나. 특히 줄광대가 차라투스트라의 품에서 '자기 고백'하는 게 이젠 남 얘기 같지가 않아. 생각난 김에 NAT GEO 본방 사이사이 나오는 <나무늘보의 오디세이>라는 자투리(?) 영상이 있는데, 이게 뜨악하면서도 인생을 초압축해서 보여준다. 한 편의 시 처럼. 배경 음악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로 그야말로 소름돋는 명작.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훑어만 봤다. '~입니다만' 이라는 제목답게 저자가 일본사람이다. 근데! 마르크스 왜 저리 귀엽게 그려 놓은 게야. 갖고 싶게. 역시 모양새에 약한 나...1844와 함께 잊히지 않는 연도가 1818이다. 정작 기억나야 할 건 어디 가고 왜 이런 건 잘 기억나는지 모르겠다. 

 

<솔로몬의 위증>

미야베 미유키 소설인 건 유명하고, 드라마는 어쩌다 봤는데 생각보다 재밌다. 근데 인기는 별로 없는 모양. 연말이라고 안 해줘서 서운한 건 나뿐인가. 주인공이 예쁘진 않은데 인상이 참하고 극 중 캐릭터에 잘 맞는 것 같다. 진짜 학생 같다(이게 뭔 소리야). 형사님 집이 너무 좋아서...다소 현실감 없긴 한데, 지금 내가 보기엔 다 현실감이 없긴 하지. 학교가.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 교육 현실도 정말 많이 변했더라. 요즘은 전교 1, 2등 해도 일반고에서 서울대는 턱도 없다는 걸 최근에야 알았다. 나 때도 치맛바람이네 위장 전입이네 말들 많았지만, 어찌 보면 '순수의 시대'의 끝자락이었던 것 같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고등학교 때가 재밌었으니까. (아니면 기억을 리셋한 걸지도.)

 

<Savage Kingdom>

찰스 댄스 때문에 봤다. 예고편부터 범상치 않은 나레이션 (영국 악센트가 멋있긴 해). 본방 보다 예고편이 더 재밌다니. 동물의 세계를 보고 있으면 내가 얼마나 자연에 불응하면서 나태하게 사는지 알게 된다. 열심히 살자. 그래도 모르는 게 인생이지만. <나무늘보의 오디세이>처럼.

 

 

올해는 원래 '셰익스피어 모두 읽기'로 정했는데 역시나 되는 대로 잡히는 대로 읽어버렸다. 뇌 용량에 맞게 당분간은 머리 덜 굴리는 책 좀 읽어야겠다. 영화나 공연은...봤어도 생각 나는 게 별로 없네. 휴...신년 맞이 '뇌세포 살리기 프로젝트'나 짜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