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부분과 전체 — 양자, 라플라스의 악마를 죽이다

부분과 전체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지은이), 김용준 (옮긴이) | 지식산업사 | 2013-10-08

원제 Der Teil und das Ganze, 1969년

 

드디어 완독했다. 완독이긴 한데 내용도 해득했냐고 하면, 그건 다른 문제고... 

하지만 이제껏 그 어느 책, 수험서도 이렇게까지 본 적이 없다고 자신할 수 있다. 정말 많이 밑줄치고 메모한 책인 거 같다. 덕분에 머리에서 피 다 빠져나가는 줄 알았다. 덩달아 앞뒤 한 두 장만 깨작대다 처박아 둔 <퀀텀스토리>도 읽고, 물론 후반부 들어서면서 현기증 유발로 스킵스킵 했지만 오랜만에 뇌 주름 조금 늘렸다.  

 

근데 이게 웬걸, '서커스'라는 곳에서 <부분과 전체> 정식 한국어판이라며 모양새도 이쁘게 신간이 출간되었다. 막 다 읽은 시점에! 각주에 해제는 물론, 원자물리학 관련 연표까지 있다고 한다.

 

지식산업사 판본은 1982년 이래로 2016년까지 개정 신판이 꾸준히 발행됐지만 아부지 컬렉션 저리가라 하는 문체를 자랑한다. 지인이 신간을 빌려줘서 읽는 중인데, 가독은 편해지긴 했어도 내용까지 쉬워진 건 아니니까 다소 위안(?)이 된다. 근데 보어 말투가 해요체로 너무 부드러운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기본적으로 (놀러 가서...나눈)대화로 구성되고, 원저도 보어를 '닐스'로 지칭하니 격식을 차린 어투는 아닐 테지만. 해제에는 독일이 뒤숭숭하던 시절 청소년 하이젠베르크가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비롯해서 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 실려있다. 찾아본 내용이 신판 해제에 정리되어 있으니 허탈하면서도 괜스레 뿌듯하기도. 그런 의미에서 각주가 조금 더 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든다. 1941년 코펜하겐 미스터리도 알려준다. (옛날에 연극 <코펜하겐>을 뭣 모르고 봐서 기억도 가물가물하고, 이번 7월 공연은 보려다가 어느새 놓쳐버렸다. <A Disappearing Number>도 재밌었는데. 다시 볼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아카디아>도.)

 

과학은 물론이고, (이슬람 신앙고백을 패러디한 파울리의 디랙 놀리기)종교, 정치, 서양 철학에 道, 노자의 식초 일화까지 인간 사고가 안 미치는 주제가 없다. 틈틈이 다시 읽어봐야지 오랜만에 백지상태에서 읽다가는 머리에서 또 피 빠져나갈 듯. 정리는 원자물리학에서 현상의 이해라는 측면과 과학자의 책임 위주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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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젠베르크는 누구인가

불확정성원리 1926

“양자역학은 인과율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선포한 최후의 법정”

위치의 불확정성과 운동량의 불확정성을 곱한 값은 플랑크상수(h) 보다 작을 수 없다.

 

출생	1901년 12월 5일, 독일 제국 뷔르츠부르크
사망	1976년 2월 1일, 서독 뮌헨
직업	이론 물리학자 (원자물리학)
취미	여행, 산책 (자연의 사도), 피아노
주요 업적	불확정성원리, 행렬역학, 아이소스핀 外
수상	노벨 물리학상(1932년), 플랑크 메달(1933년)
(책 속)  주요 인간관계	플랑크, 조머펠트, 보어, 아인슈타인, 보른 파울리, 디랙, 슈뢰딩거 카를 프리드리히 폰 바이츠재커, 오토 한
성장 배경	남부 독일의 프로이센 규율 공통적인 과제를 향한 개개인의 종속감 사생활의 절제, 성실, 청렴 기사도 정신 정확한 임무수행
시대 상황	1차 세계대전, 독일 제국 붕괴, 2차 세계대전, 냉전 시대
특기 사항	바이마르 공화국 민방위 청년 활동 우라늄 클럽 괴팅겐 18인

 

한 사람을 살펴보려면 어떤 배경에서 성장했는지 보아야 할 것이다. 저자는 현대 독일 정체성의 모태가 되는 프로이센 규율 속에 성장했다. 저자의 아버지는 뮌헨 대학에서 그리스어를 가르치고, 할아버지 역시 지역 김나지움의 교장을 역임했는데 역자 후기에 따르면 괴테와도 먼 친척이라고 한다. 뼈대 있는 교육자 집안에서 성장했지만 형편이 넉넉한 편은 아니었던 모양인지 보어축제에 갈 때는 스승인 조머펠트가 경비를 대주었으며, 아인슈타인의 세미나에 갔다가 짐을 도둑맞고 비싼 기차표를 사 준 아버지에게 차마 말할 수 없어서 나무꾼 일자리를 구해 손실을 충당하기도 한다. 은근히 허당 기질이 있어서 뭔가 잘 잃어버리고 허둥대거나, 피곤하면 어디서든 털썩 주저앉아 잠도 잘 든다. '자연의 사도'답게, 그리고 이름값 하는지 산으로 들로 돌아다니길 좋아한다. 

 

아무튼, 저자도 언급했듯 마그데부르크와 쾨니히스베르크 사이에서 자란 사람들과는 다른, 프로이센 사고방식과 플라톤 사상은 저자 평생의 가치관을 형성한다. 이런 점은 보어와 학문적, 인간적인 관계에서 상보적이면서 모순적으로 드러난다. 여담이지만 칸트가 나고 자란, 프로이센의 발상지인 쾨니히스베르크는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칼리닌그라드라고 불리는 러시아 땅이 이제 칸트의 고향. 책의 내용과 역사의 흐름에서 생각해 보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양자역학의 이해와 실증주의, 언어

'보어축제'에서 보어와 대학생 하이젠베르크 1922

보어: 원자를 설명하는 언어는 시의 언어 같이 사용될 수밖에 없습니다. 시에서의 언어란 어떤 사실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청중의 의식 속에서 어떤 상을 형성케 하고 그 상에 의해서 사람들 사이 마음의 결합을 가져오게 하는 것입니다. (70)

 

하이젠베르크: 그렇다면 어떻게 진보를 이룰 수가 있는 겁니까? 결국 물리란 정밀과학이어야 할 텐데 말입니다. (70)

우리가 이 구조에 관해서 말할 수 있는 언어를 소유하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는 도대체 언제나 원자를 이해할 수 있단 말입니까? (71)

 

보어: 우리는 바로 그때 동시에 '이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느냐도 배우게 될 것입니다. (71)

 

 

미국 물리학자 버튼과의 대화 1929

미국에서 양자역학을 강의하게 된 저자는 미국 물리학자들이 거리낌 없이 새로운 고찰 방식을 받아들이는데 놀란다. 저자는 이런 차이가 어디서 오는지 묻는다.

 

버튼: 기존의 이론을 수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그 결과 양자역학이 성립되었습니다. ...이 때 물리학자는 교량을 건설하는 엔지니어와 같이 단순하게 행동합니다. (엔지니어는) 좀 더 신뢰할 수 있는 건축설계를 하는 것이고 물리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연법칙이라는 표현 자체가 근본적으로 해당 영역에서 자연과 교제할 때의 실용적인 하나의 처방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152)

 

하이젠베르크: 개량이라고 할 때는 이때까지의 의미를 그대로 지니고 있으며 기술자는 도대체가 지금까지의 개념을 바꿀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새로운 경험영역에는 새로운 개념 구조가 필요합니다. ...이른바 엔지니어가 말하는 연속적인 진보라는 당신의 표상은 우리 과학에서 모든 힘을, 다시 말하면 모든 엄정성을 빼앗고 맙니다. (155, 157)

 

저자는 되도록 확실하고 급격한 진보를 위해 적용 가능한 방법을 제시하는 것보다 단계마다 나타나는 개념 구조를 문제시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연은 이해될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 저자의 신념이다. 자연을 이해할 수 있게 우리 사고 능력이 만들어져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타당할지도 모른다.

 

“나는 자연법칙이 출현한다고 표현하고 싶다.” (161)

 

 

칸트 철학 넬슨학파의 그레테 헤르만과의 대화 1930-32

(feat. 카를 프리드리히)  

프리드리히: 원자는 더 이상 사물도 아니고 대상도 아니며 언어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원자에 관한 외관상의 대립은 마치 우리가 원자 자체를 말할 수 있는 것 처럼 다루고 있는 데서 비롯되고 있으며 이미 물자체는 문제가 있는 개념입니다. (187)

 

헤르만: 원자는 객체입니다. 현상계에 현상을 일으키고 인식으로 경험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자연과학이 객관적이라는 의미는 지각에 대해서가 아니라 객체에 대해서 말하기 때문에 객관적이라는 것입니다. (189)

 

프리드리히: 양자역학에서는 칸트가 미처 생각할 수 없었던 물자체를 객관화하는 새로운 방법으로 원자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경험이 지각으로 결과되는 것이라면 모든 지각은 이미 정해져 있지 않으면 안 되는 하나의 관찰상황과도 관계됩니다. 하지만 지각의 결과는 고전물리학에서 가능한 인과율과 결정론으로는 더 이상 객관화되지 않습니다. (189)

 

헤르만: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것을 안다'는 이야기는 사람들이 확고하게 설 수 있는 인식의 밑바탕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겁니까? (193)

 

프리드리히: 우리 인간의 처지에서 경험이라고 불리는 관계에 서게 될 때에는 칸트의 철학은 어디에서나 정당한 것이며 참지식입니다. 하지만 이 '선천적인 것'도 뒷날 인식 과정의 좀 더 포괄적인 분석의 일부분이 될 것입니다. 역사의 발전과 더불어 인간의 사고구조도 바뀐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의해야 합니다. 과학의 진보란 단순히 새로운 사실을 알고 이해하는데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해한다'는 말이 무엇을 뜻하느냐 하는 것을 항상 배워나가면서 성취되는 것입니다. (194)

 

칸트의 사상을 극복하고 재정의하는 과정으로 양자역학을 파악할 수 있다. 즉, 지각의 결과가 아닌 경험으로 인간 사고 구조를 새롭게 터득해가면서 본연의 자연을 이해할 수 있다. 

“하느님이 이 세상을 어떻게 다스리실 것인가를 지시하는 것은 우리들의 과제가 될 수 없습니다.”  - 보어

 

 

부활절 휴가 때 보어와 동료들과의 여행 1933

보어: 물리학자의 관찰과 전달의 일련의 과정은 실제로 고전물리학의 언어로 먼저 설명됩니다. 이 언어는 한정된 응용 범위밖에는 갖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우리는 이 언어에 기댈 수 밖에 딴 도리가 없으며, 결국은 그 언어로 현상을 간접적으로나마 파악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고전물리학의 언어가 우리에게 옳은 길을 찾게 하거나 이해시키기에는 매우 불완전한 도구라는 것을 알지만 이 도구는 수리과학의 전제입니다. (203)  

 

하이젠베르크: 나는 빈 학파의 열광적인 실증주의자와 주고받은 서신에서 실증주의자들이 모든 말은 반드시 완전히 결정된 의미를 가지며, 정해진 의미를 벗어난 언어의 사용은 허락될 수 없는 것처럼 주장하는데 화가 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 예를 들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가 존경하는 사람이 방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 '방안이 환해졌다'고 말했다면 이의 없이 이해될 수 있을 것이라고 편지를 썼었습니다. 물론 광도계에 아무런 차이가 없을 것을 나는 충분히 알고 있었습니다. (209)

미국의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말이 주는 주된 의미가 듣는 사람의 의식 속에서 부수적으로 감지되고, 그래서 다른 개념들과도 결부되면서 무의식의 세계까지 확산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일반 언어에서도 그렇지만 시인들의 언어에서는 특히 타당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자연과학 언어에도 어느 정도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전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던 개념들의 적용 범위가 얼마나 제한되어 있는가를 바로 양자역학에서 싫증이 날 정도로 배워 왔습니다. ...실증주의자들이 언어의 가치를 충분히 강조하고, 논리적으로 예리하게 정식화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날 때 그 언어가 내용을 상실하게 될 위험성을 경고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참으로 옳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가 자연과학에서 이 이상 기껏해야 가깝게 접근은 할 수 있지만 절대로 거기에 이를 수 없다는 점은 간과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연과학에서 수학적인 언어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을 다시 자연에 대해서 진술하고자 할 때 일반적인 언어로 이행해야 하며, 이것이야말로 자연과학의 과제이기도 한 것입니다. (210, 211)   

 

보어: 언어, 그리고 그와 연결된 사고 능력은 다른 신체적 능력과 달리, 개체적인 개개인 안에서 발달한 능력이 아니라 개인 사이에서 발달한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언어를 다른 사람들로부터 배웁니다. 따라서 언어란 인간 사이에 펼쳐진 그물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의 사고, 즉 자기의 인식의 기능으로써 그 그물에 매달려 있는 것입니다. (215)

[불교 '연기' 인드라망]

 

식사 후 설거지 담당인 보어가 

“설거지는 마치 언어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더러운 설거지 물과 냅킨을 가지고도 접시와 컵을 깨끗이 씻는 데 성공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불명확한 개념과, 적용 범위도 뚜렷하지 않은 논리를 가진 언어를 사용하여 자연에 대한 이해를 명백하게 하는 데 성공하고 있습니다.” (213)

[“과학은, 지성이 결코 파악할 수 없으나 시적 직관이 이해할 수 있는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전진한다." - 플랑크]

 

 

코펜하겐 학회에서 파울리와 대화 1952

“...물리학의 모든 영역에 걸쳐서 타당하고 기본법칙 안에서 대칭성이 보증되고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고 하면, 바로 이 대칭성이야말로 자연을 창조하고 있는 계획의 기본요소라고 말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이때 '계획'이라든가, '창조되었다'라는 말들 또한 인간의 언어에서 가져온 것이며, 따라서 기껏해야 은유로밖에 통용될 수 없음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말을 사용하여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에 더 가깝게 다가 설 수 있는 인간 외적인 개념들을 인간의 언어가 만들어 낼 수 없다는 것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나로서 자연과학자적인 진리개념에 대해서 무엇을 더 말해야 한단 말인가?” (326)

 

“실증주의자들은 세계에 대하여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침묵을 지켜야 할 부분이 있다는 식의 간단한 해결 방법을 하나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이러한 경우 침묵을 지켜야 할 것이다. 허나 이보다 더 무의미한 철학이 또 어디에 있을까. 그 까닭은 사람들에게는 어느 하나도 완전히 뚜렷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모든 불분명한 것을 제거해 버린다면 아무 흥미도 없는 무의미한 동어반복만 남게 될 것이다. ...내 비판이 좀 지나칠지도 모르지만, 내 식대로 말하면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모호하게 만들려고 하고 있는, 적어도 그것에 관해서 생각하는 것을 아무에게도 권하려 하지 않는 과오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327)

[1953년 비트겐슈타인 <철학적 탐구>]

[아르토와 그로토프스키, 신체언어 VS 텍스트]

 

 

 

역사와 윤리, 정치와 과학

미국에 있는 동료들을 만나다 1939

저자는 1937년 아인슈타인을 변호했다는 이유로 구속 심문을 받는다. 과학자를 비롯한 많은 지식인이 독일을 떠나 미국에 이민을 간다. 저자는 플랑크와 대화를 나누면서 히틀러의 광기로 파국을 맞이할 것이 뻔한 독일의 재건을 위해 남기로 한다. 1938년 여름 국제 정세 긴장으로 암운이 짙게 드리우고, 그 해 오토 한은 우라늄 핵 분열을 발견한다. 저자는 여행이 가능할 때 미국으로 지인들을 만나러 간다. 정치적 파국 후 재건 사업에 종사하면서 그들의 도움을 기대하고 싶기 때문이다. 페르미는 저자에게 미국 이민을 권유하지만  

  

“우리는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어떤 일정한 주위환경과 일정한 언어와 사고영역에서 태어나서 매우 어릴 때 그곳을 떠나지 않는 이상 그는 그 영역에서 가장 적절하게 생장할 수 있으며, 능률적으로 일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인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어느 나라든 조만간 혁명과 전쟁을 만나게 됩니다. ...모든 사람이 이민을 간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오히려 반대로 모든 사람이 자기 나라의 파국을 자기들 스스로 해결해 달라고 요청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264)

 

 

'우라늄 클럽'을 맡다 1939-45

개전 후 저자는 당국에 소집되어 '우라늄 클럽'을 맡게 된다. 1941년 원자폭탄을 만드는 기술 비용을 과대평가하였고 정부에 있는 그대로 보고한다. 독일정부가 막대한 비용이 드는 원자폭탄 제조 명령을 내리지 않으리라 확신하면서 이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1942년 예상대로 원자폭탄 제조명령은 내려오지 않았고 물리학자들도 그 결정을 수정하도록 건의할 어떤 이유도 없었다. 다만 원자로 연구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방침에 따라 우라늄 프로젝트는 전후 평화적 원자기술 연구와 개발을 위한 준비가 된다.

 

“원자기술의 결정적인 첫걸음은 한의 발견에서 비롯되었으며, 원자물리학자들은 본디 국경을 넘어서 항상 잘 협력해 왔습니다.” (288)

 

 

부테난트와의 대화 1943

부테난트: 냉철한 논리적 사고는 우리에게 참으로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확실히 지성인의 수가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 민족으로서 지성보다 어떤 환상을, 사상보다는 감정을 더 높게 평가하면서 꿈속에서 헤매고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따라서 과학적인 사고방식이 존중되는 일이 무엇보다도 시급합니다. (285)

 

하이젠베르크: 우리 독일사람들은 논리와 자연법칙의 테두리 안에서 주어진 사실을 일종의 강요, 또는 마지못해 복종하고 있는 억압으로 느끼기 일쑤입니다. (286)

과학에서 논리적인 사고와, 단단히 짜인 자연법칙의 이해와 적용만이 문제가 된다는 건 전혀 올바르지 않습니다. 도리어 실질적인 면에서 환상은 과학의 영역, 특히 자연과학에서도 결정적인 구실을 하고 있습니다. ...과학은 논리적인 냉철한 사고, 음악은 화성악과 대위법의 규칙에 의존하고 있을 때 가능합니다. 즉, 절대적인 것을 향한 이러한 극단적인 긴장 관계에서만 자기의 실체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형식이 파괴되자마자 우리가 지금 눈앞에서 보고 있는 바와 같이 혼란이 일어나고 맙니다. (286, 287)

 

 

연구자의 책임에 대하여 1945-50

1945년 4월 이래로 저자는 하이델베르크, 파리, 벨기에에서 억류생활을 하다가 프리드리히 등 우라늄 클럽 동료들과 함께 영국 팜홀로 가게 된다. 신문하던 미국 물리학자들은 독일의 원자에너지 연구에 대해 별반 묻지 않는다. 반면, 영국이나 미국에서 전쟁 중 우라늄 연구를 하지 않았냐는 저자의 반문에 자기네는 좀 더 유효한 과제를 맡았다고만 대답한다. 맨해튼 프로젝트를 몰랐던 저자는 그 대답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1945년 8월 6일 미국이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한다. 

 

저자는 25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온 원자물리학이 그 발전으로 10만 명이 훨씬 넘는 민간인을 죽음으로 내몬, 인류 최악의 살상 무기가 되었다는 현실에 착잡함을 감추지 못한다.   

 

하이젠베르크: (미국의 물리학자들에 대해) 우리는 무어라고 비판할 자격이 없다고 본다. 우리도 우리 정부가 저지른 무서운 일을 조금도 막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전도를 알 수 없었다는 것은 어떠한 변명도 될 수 없다. ...우리는 역사에서 선을 위해서는 모든 수단이 허용될 수 있다는 대원칙, 목적은 수단을 신성화한다는 이 원칙이 항상 반복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고과정을 막을 수 있는 무엇이 존재할 수는 없는 것일까? (302)

 

프리드리히: 승리가 이미 확정되었던 단계에서 원자폭탄을 썼다는 사실은 결국 세력확장을 위해 서로 투쟁하고 있는 민족국가시대로 되돌리는 것을 뜻하며, 결국은 세계의 통일을 위한 자유질서라는 목표로부터 한 발짝 멀어지는 것입니다. 미국이 지니고 있었던 장점을 약화하고 세계적 사명에 대한 신용을 떨어뜨렸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305)

물리학자나 기술자가 정치가보다 정치적으로 중요한 결정을 더 잘 내릴 수 있다고 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학문적 연구에서 객관적으로 그리고 사실적으로 생각하는 방법을 배웠으며... 미국의 원자물리학자들은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너무 소극적이었다는, 즉 원자폭탄 사용 결정권을 너무 손쉽게 손에서 놓아 버렸다는 비난을 모면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원자폭탄 투하의 역효과를 충분히 알고 있었다고 믿어지기 때문입니다. (307)

 

하이젠베르크: 나는 이러한 문맥에서 '비난'이라는 말을 입에 담아야 하는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없다. 아마도 우리는 이 자리에서 바다 건너 저쪽에 있는 우리 친구들보다 단순히 운이 좋았다고 생각될 뿐이다. (307)

 

저자는 1946년 1월 억류생활에서 풀려나 독일로 돌아온다. 이후 부족한 물자로 어렵게 재건 사업에 힘쓰며 오히려 학자로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1947년 보어를 방문한 저자는 1941년 10월 코펜하겐에서 나눈 대화를 재현해 보려 했으나 서로의 기억이 너무도 엇갈려 있다는데 좌절한다. 

 

“보어는 나의 너무나 조심스러웠던 표현이 그에게 준 공포에 대해선 잘 기억하고 있었으나, 내가 그 기술출자 비용이 막대하고 그런 경우 물리학자로서 어떻게 처신하는 게 좋겠냐고 물은 이야기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309)

 

 

 

번외) 1941년 코펜하겐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저자는 우라늄 연구에 대한 이런저런 고민으로 결국 1941년 가을 학술강연을 기회 삼아 코펜하겐으로 가서 보어를 만난다.

 

“나는 보어에게 원리적으로는 원자폭탄을 제조할 수 있다는 점, 그러기 위해선 막대한 비용이 든다는 점, 따라서 우리는 이 같은 연구에 종사하는 게 옳은지 자기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하려고 애썼다. 유감스럽게도 보어는 원리적으로 원자폭탄을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단히 놀라서 내 얘기의 가장 중요한 부분 즉, 대단히 막대한 기술비용이 든다는 말은 더 이상 진지하게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280)

 

“독일 군대가 그의 나라를 폭력적으로 점령한 데 대한 당연한 분노가 그로 하여금 국경을 넘어서 물리학자들의 상호이해를 고려하는 일조차 불가능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독일 정책이 우리 독일 사람들을 얼마나 철저하게 고립상태로 몰고 갔는지를 새삼 느낄 수밖에 없었다.” (281)

 

 VS

 

크리스티안 묄레르와 스테판 로센탈은 당시의 씁쓸한 분위기를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날 하이젠베르크는 '독일이 반드시 전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말을 여러 번 강조했다. ...그리고 독일이 덴마크와 노르웨이, 벨기에, 네덜란드를 점령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동유럽 국가들은 스스로 다스릴 능력이 없기 때문에 독일 정부가 개입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더 바람직한 일이라고 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처음부터 매끄럽지 않았고 시간이 갈수록 더욱 악화되었다. 보어는 독일의 소련 침공을 두둔하는 하이젠베르크의 주장을 끈기 있게 들어주다가 “독일이 전쟁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말에 기어이 분노를 터뜨렸다. 그리고 하이젠베르크가 핵폭탄 개발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을 때는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1947년 오펜하이머(맨해튼 프로젝트 지휘)는 이렇게 말했다. “전쟁을 계기로 물리학자들은 죄가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깨달았다. 다른 지식은 모두 잊어버려도 이것만은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 <퀀텀스토리> '막간' 1차 물리학 전쟁 中

 

"대부분의 독일 과학자들은 나치와 함께 일했습니다. 하이젠베르크조차도 온 힘을 다해 이 범죄자들을 위해 일했습니다."  - 막스 보른이 아인슈타인에게 보낸 편지 中

 

AND

 

"처음부터 자네는 전쟁이 오래 지속되면 핵폭탄으로 마무리될 거라고 확신했지...내가 의심스러운 표정을 짓자 자네는 '이 분야에 오래 투신해왔기 때문에 잘 안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고 단연하지 않았나." - 1957년 보어의 부치지 않은 편지 中

 

2002년 보어의 유가족은 1957년 보어가 하이젠베르크에게 썼지만 부치지 않았던 편지를 공개한다. 하이젠베르크의 코펜하겐 방문은 1941년이었는데 왜 편지가 한 참 뒤에 쓰였을까?

 

1956년 로베르트 융크가 맨해튼 프로젝트와 우라늄 클럽에 대한 책 <태양 천 개보다도 더 밝은>을 출간한다. 융크는 미국 과학자들이 더 윤리적이라는 건 역설이라고 말한다. 하이젠베르크는 융크에게 1941년 보어를 방문했을 때 과학자가 핵무기를 연구하는 게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는 얘기를 하려고 했으나 제대로 전달이 안 됐다는 내용으로 편지를 썼다. 1957년 융크는 이 편지를 덴마크어판에 실었다. 

 

 

 

처음과 끝 플라톤의 <티마이오스>

‘현실’의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닌 ‘이상’의 플라톤

 

1919년 저자는 물질의 최소단위가 직각삼각형에서 구성된다는 플라톤의 <티마이오스>를 읽으면서 물질의 최소 단위에 빠져들게 된다. 1920년 봄 친구들과 도보여행 중 로베르트와 대화를 나누면서 그 당시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던 원자론과 그 철학적 사색에 매혹된다. 

 

로베르트: 고양이에 관해서 객관적인 측면과 주관적인 측면이 다 같이 존재한다. 즉 사물로서의 고양이와 표상으로서의 고양이가 있다. 하지만 원자는 전혀 다르다. 원자에는 표상과 사물이 분리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원자는 본디 그 어느쪽도 아니기 때문이다. (27)

 

토론이 어지럽게 진행되다 한 친구가 바흐의 <샤콘느>를 연주하자 분위기가 갑자기 정리되며 회복된다. 이때 저자는 과학의 언어로, 철학의 언어로, 예술의 언어로 중심 영역에 관해 말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1958년 파울리가 통일장 이론 공동연구 발표를 앞두고 수술 도중 사망한다. 이후 저자는 뮌헨 막스플랑크 연구소를 이끌면서 원자물리학 연구에 박차를 가한다. 저자는 물질을 구성하는 궁극적인 부분에서 소립자보다는 대칭성이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플라톤의 철학을 명상해 본 사람은 세계가 어떠한 상으로 정해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376)

“보어가 '사람은 항상 커다란 드라마 속의 관객이면서도 공연자'라고 말한 것처럼, 인류의 시간이란 척도에서 본다면 우리 자신의 협력은 매우 짧다고 할지 모르나 생활도, 음악도, 학문도 끊임없이 전진하리라는 확신이 차츰 깊이 파고드는 것이었다.” (377)

 

<티마이오스>를 읽으면서 일관되게 추구해 온 물질의 대칭성에 대한 믿음을 간직한 채 1976년 2월 저자는 생을 마감한다. 

 

 

이 책에서 가장 지분을 많이 차지하는 철학자는 플라톤과 칸트이고 문인은 괴테와 실러라는 점이 흥미롭다. 서양 인식론에서 이원론의 창시자와 혁신자라고도 할 수 있는 플라톤과 칸트는 이데아와 물자체를 상정하고, 현상이란 이 진정한 실재의 불완전한 반영이라고 이야기했다. 칸트는 물자체의 본연은 알 수 없고, 현상은 인간이 아는 대로(아 프리오리, 선험적) 작동한다고 했는데 10장에서 저자는 프리드리히의 말을 빌려 칸트가 미처 자각하지 못했던 물자체를 객관화하는 '방법'으로 인간은 '이해한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배워가고 이로써 우리 사고 구조 역시 만들어 갈 수 있다고 말한다. 

 

처음 수학을 전공하기로 마음먹고 린데만 교수를 찾아갔다가 교수의 사나운 검둥개를 메피스토에 비유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괴테도 자주 언급된다. 괴테와 실러는 흔히 말하는 질풍노도, 슈투름운트드랑 Sturm und Drang의 중심인물로 진정한 실재를 파악하는 감각적인 현상이 있다고 보고, 타고난 개성의 존중과 감정의 해방을 주장했다. 반실존주의 성향을 보이는 보어가 동양 철학에 조예가 깊고 실러를 즐겨 인용하는 점도 흥미롭다. 그러고 보면 보어는 비유의 달인이었던 것 같다. 정말로 원자를 이해했다면 원자의 비밀과 신비함을 감춘 채로 진리가 드러나게 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보어의 생각이다. 현대물리뿐 아니라 미술, 음악을 포함한 오늘날 예술 영역에서 점차 추상적 활동과 복합 영역이 중요해지면서, 과학과 예술 간의 정합적이고 상보적인 사고는 실로 중요해졌다. 

 

<부분과 전체>는 역사 속에서 '관계'로 가득찬 움직임을 원자물리학을 통해 이야기한다. 양자역학으로 관계를 새롭게 지각하면서 봉우리 하나를 넘었다면, 저자는 과학자로서, 인간으로서 플라톤 철학을 새롭게 이해하고 배우는 과정으로 대상과 주체를 관통하는 중심질서를 찾고자 했다. 눈보라를 맞으며 눈앞에 닥친 봉우리를 넘듯, 물리학은 서양 사상의 근간을 하나하나 넘으면서 거대한 세상의 원리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해왔다. 21세기에도 세상 모든 것에 대한 이론, '만물이론'을 찾는 탐험으로 이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 참고자료 ** 

<퀀텀스토리> 짐 배것, 반니

동아사이언스 dongascienc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