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T.S. 엘리엇을 기억하며 — 1965 그리고 2015

제레미 아이언스, 피오나 쇼, 사이먼 러셀 빌, 시네이드 큐잭, 벤 위쇼가 모두 모였다. 거기에다 톰 스토파드까지! 

 

작년 10월 런던 도서관에서 펀드레이징을 겸해서 주최한 T.S. 엘리엇 오마주 이벤트. T.S. 엘리엇은 세상을 떠나기 전 13년 동안 런던 도서관장을 지냈다. 현재 관장은 톰 스토파드. 라인업 참 후덜덜하다. 책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정말 놓칠 수 없는 이벤트. 데보라 워너가 무대 연출을 맡아 배우들이 <황무지>, <텅 빈 사람들>, <네 개의 사중주>, <J. 알프레드 프루프록의 연가> 등 엘리엇의 작품을 낭독했다. <지혜로운 고양이가 되기 위한 지침서>에선 제레미 아이언스가 극장 고양이 '거스'를, 사이먼 러셀 빌이 악당 고양이 '맥캐버티'를 맡았다고. 위쇼는 <J. 알프레드 프루프록의 연가>를 낭독했다고 한다. 

 

데보라 워너, 사이먼 러셀 빌, 벤 위쇼, 시네이드 큐잭, 톰 스토파드, 피오나 쇼, 제레미 아이언스

 

 

이 이벤트는 엘리엇이 세상을 뜬 해인 1965년 로렌스 올리비에, 피터 오툴, 폴 스코필드, 그라우초 막스 등 당대 유명 배우들이 참여했던 특별 오마주를 반영한 것. 2015년 역시 실력파 배우들이 참여하여 엘리엇 사후 50주년의 의미를 더하고 더불어 펀드레이징도 쏠쏠했다고. 사실 연극 한 편 본 거나 다름없을 듯. (당시 소식을 듣고 배가 아프다 못해 찢어질 뻔...)

 

&lsquo;윌튼스 뮤직홀&rsquo; 분위기 좋아 보인다

 

무대 위 톰 스토파드와 배우들

 

제레미 아이언스&nbsp;극장고양이 '거스'

All photos taken by Helen Maybanks, copyright London Library

 

 

1922년, 다다의 숨이 다해갈 때 <황무지>가 탄생했다. <황무지>는 제1차 세계대전 후 정신적으로 황폐해진 유럽을 황무지로 상징화한 것으로 원래 800행쯤 되었는데 에즈라 파운드의 제의로 433행으로 줄였다고 한다. 파운드의 편집으로 서사구조가 사라진 <황무지>는 새로운 시 즉, 현대시의 정의가 되었다. 주지주의 문학의 상징과도 같은 이 시를 몰라도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구절을 한 번도 안 들어본 사람은 드물 것이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

겨울은 따뜻했었다.

대지를 망각의 눈으로 덮어주고

가냘픈 목숨을 마른 구근으로 먹여 살려 주었다.

 

엘리엇은 '객관적 상관물’이라는 개념을 정식화했는데 이는 특정한 정서를 표현할 때 수단이 되는 일련의 사물이나 사건, 정황을 말한다. 작가의 의도에 따른 ‘텍스트 단위’로도 설명될 수 있는데 ‘병치’된 텍스트들은 어떠한 ‘정서’를 ‘환기’해야 하며 이는 ‘시적 이미지’와 상통한다. 시는 그 자체로 아름다워야 하며 시인의 감정이나 개성을 몰아내야 한다는 엘리엇의 모더니즘 시론은 아직도 낭만주의적 시론이 유효하던 20세기 초에 신선한 충격이었다. 시인이 표현하는 방식은 그 자체로 절대적이며 여기서 시인의 감정은 철저하게 배제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독자는 의미생산자로 새로운 미적 체험을 할 수 있다.

 

엘리엇은 유럽 문명에 대한 회의, 미래에 대한 염세적인 관점으로 시를 썼으며 — 행복하지 않은 결혼생활의 영향도 있었다  — <네 개의 사중주>로 1948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말년에는 비서와 재혼하여 시인으로서 명성과 더불어 안온한 삶도 꾸렸다. 1965년 1월 4일 사망했으며 위에서 언급한 추모 행사가 6월 13일에 열렸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을 시작으로 로렌스 올리비에가 <리틀 기딩>을, 피터 오툴이 <J. 알프레드 프루프록의 연가>를 낭독했다. 무대는 헨리 무어의 조각으로 장식되었다. 그라우초 막스는 <지혜로운 고양이가 되기 위한 지침서>를 맡아 좌중을 휘어잡았는데, 제레미 아이언스의 사진만 봐도 그 익살을 짐작할 수 있다.

 

 

 

+ 위쇼는 지난 달 레딩 감옥에서 오스카 와일드의 <심연으로부터> 낭독회도 했다. 시설의 퍼블릭 오픈 기념으로 레이프 파인즈, 패티 스미스, 맥신 피크 등이 참여했는데 정오에 시작해서 오후 5시 정도까지 이어지는 낭독회로 웬만한 모노드라마보다 좋았다는 평이 많다. 아우 배 아파... 

 

++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데 나는 배가 아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