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 프란츠 Frantz — 현재라는 그림 앞에 서다

<영 앤 뷰티플>, <나의 사적인 여자 친구>를 마지막으로 소위 ‘기 빨린다’는 생각에 나의 관심에서 멀어져 간 프랑수아 오종. '프랑스' 감독, 발칙한 작품 세계, 힙스터의 아이콘이란 이미지를 남긴 채. 오종 감독의 2016년 작 <프란츠 Frantz>는 12세 관람가다. 흑백의 스틸 이미지에 아련함과 고전미가 뚝뚝 흐른다. 감독의 이름이 새삼스러울 정도다. 일단 보기로 한다.

 

photo : unifrance.org

 

왜 ‘프란츠’인가?

<프란츠>는 1919년, 1차 세계대전 직후의 이야기다. 영화는 독일의 한 작은 마을에서 시작한다. 한데 타이틀롤인 프란츠는 영화 시작부터 이미 죽고 없다. 전사한 것이다. 프란츠의 약혼녀였던 안나는 프란츠의 부모와 살며 매일같이 그의 무덤을 돌본다. 그래도 영화 제목인데 프란츠가 회상으로 등장하겠지, 라는 기대는 접어두자. 두어 번 나오긴 해도 사건 속에서 이름으로 언급되는 게 다반사다. 아이러니하게도 프란츠의 무덤에도 프란츠는 없다. 프랑스에서 전사한 그의 시신을 수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란츠의 부재는 영화 내내 색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산 자의 주위를 맴도는 그림자처럼.

<프란츠>는 흑백영화다. 현재와 동떨어진, 20세기 초 비극적인 사건을 보는 관객에게 흑백 화면은 설득력을 갖는다. 그러다 화면이 컬러로 전환되는 장면들이 있다. 프란츠에 관해서다. 프란츠를 직접 언급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이때 화면은 따스하고 아련하다. 아름다운 색채가 전하는 진한 아이러니에 가슴 시리기도 하다. 프란츠는 현실에서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안나가 추억하는 프란츠도, 아드리앵이 회상하는 프란츠도 과거의 존재다. 색채는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어쩌면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들에 관한 이야기다. 색채는 흑백의 현실을 자각하게 한다. 현재란, 흑백과 색채가 한데 모이는 팔레트인지 모른다.

색채는 어느덧 현재의 사람들에게도 색을 드리운다. 그렇게 인물들은 자신의 현재를 받아들이고 과거에서 벗어난다. 아드리앵의 거짓말로 프란츠의 아버지는 아들의 죽음을 이해하게 된다. 전쟁으로 스러져간 젊은 영혼들을 위로하고 안나에게도 일어서야 한다고 힘을 돋운다. "밖에 나가서 네 인생을 살아." 프란츠의 아버지는 안나에게 말한다. 밖이란 물리적인 의미도 있지만, 현재를 살라는 뜻이기도 하다. 진실을 아는 안나는 괴롭기만 하다. 아이러니다. 아드리앵 역시 안나의 거짓말 덕에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고 현재를 살아간다.

전장에서 장전도 하지 않은 총을 들었던 프란츠. 그는 안나에게 무슨 일이 있더라도 삶을 계속 사랑하고 행복해야 한다는 당부의 편지를 썼다. 프란츠와 프란츠 부모의 바람대로 안나는 현재의 삶을 살며 사랑할 수 있을까?

왜 '마네'인가?

이 영화의 큰 모티프는 마네의 <자살>이다. <자살>은 마네의 작품 중 비교적 언급이 덜 되는 그림인데, 오스트리아 화가 줄 홀트차펠의 죽음을 그렸다는 설이 있다. 매번 살롱전에서 낙방하던 이 젊은 화가는 결국 스스로 방아쇠를 당겨 생을 마감한다. 화가로서 마네 자신의 고통과 투쟁을 은유한 그림이라는 얘기도 있다. 지금이야 인상주의의 아버지로, 근대 회화의 선구자로 추앙받지만 <풀밭 위의 점심 식사>, <올랭피아>로 당시 파리 살롱과 반목한 화가가 마네다. 어느 설이 맞든, 제도권 미술을 비판한다는 교집합이 있다.

안나는 아드리앵을 찾아 프랑스로 떠난다. 아드리앵은 프란츠가 마네의 '어떤' 그림을 좋아한다고 했다. 실은 아드리앵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이지만. 루브르에서 마네의 그림을 찾아 소박한 발걸음을 옮기는 안나. 거대하게 걸려 있는 <풀밭 위의 점심 식사>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아드리앵이 말한 그림은 <풀밭 위의 점심 식사> 아래 조그맣게 걸려있다. <자살>이다. 아, 루브르에 두 그림이 저렇게 걸려있나 보군, 싶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정말 저렇게 걸려 있나? 하는 의구심이 드는데 이 두 그림으로 영화적 메타포가 절묘해지기 때문이다. (<자살>의 소장처는 취리히의 뷔를레 컬렉션이고 <풀밭 위의 점심 식사>는 오르세다. 루브르에 가 봤거나 상식이 풍부한 관객이라면 이 영화적 거짓말을 대번에 알아챘을 것이다.)

<프란츠>는 검은색이 지배적인 마네의 화풍을 닮았고 정물에서 오히려 생기가 도는, 그래서 일상의 순간이 드러나는 마네의 그림을 닮았다. 프랑스로 가서 직접 보고 경험한 안나의 여정은 현실 세계를 담은 마네의 화폭과도 같다. <풀밭 위의 점심 식사>로 파문을 일으킨 이래 끊임없이 자신만의 화풍을 밀어붙이며 살롱과 반목한 마네. 마침내 심사 없이 살롱에 전시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 1881년으로 죽기 2년 전, <자살>을 완성한 해다.

다시 찾은 루브르. 안나는 정면의 그림을 보고 있지만, 영화를 보는 우리는 그림을 보는 안나와 정면으로 마주한다. 안나가 마치 나를 보는 것 같다. '풀밭 위의 여인'처럼. 안나의 시선을 마주할 때, 그는 전쟁의 비극을 겪은 20세기 초 어느 여성이 아니라 내 앞의, 현재의 인물처럼 느껴진다. 안나의 현재가 나의 현재가 되는 순간이다. <자살>을 보며 안나는 말한다. "살려는 의지를 주거든요." 안나의 말과 표정에서 아이러니를 넘어 묘한 희열이 전해진다. 그림의 마지막 붓질을 끝냈을 때처럼. 화면엔 어느덧 색이 입혀진다. 그림 속 홀트차펠은 붉은 피를 흘리며 스스로 생을 마감했지만 안나는 역경을 이겨냈고, 현재를 살아가겠노라 했다. 안나의 시선에 우리도 대답을 던져야 할 것 같다. 용기를 내보겠다고.


<프란츠>는 고전적인 작법을 빌려 현재의 삶에 화두를 던진다. 그 손길은 부드럽지만 예리하고, 따뜻하지만 덧없기도 하다. 이토록 담담하면서 도발적인 영화라니. 오종의 '발칙함'을 사랑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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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tz (2016)

Directed by François Ozon
Screenplay by François Ozon, Philippe Piazzo
Based on Broken Lullaby by Ernst Lubitsch

Cast
Paula Beer - Anna
Pierre Niney - Adrien Rivoire
Ernst Stötzner - Doktor Hans Hoffmeister
Marie Gruber - Magda Hoffmeister
Anton von Lucke - Frantz Hoffmeister

안나 역의 파울라 베어의 매력이 대단하다. 순수하고 예민하고 쇠잔하지만 아름답고 슬프면서도 천진한 연기로 보는 내내 극에 몰입하게 한다. 천의 얼굴이 바로 이런 것. 오랜만에 배우에 빠져 버렸다. <운디네>를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