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오랜만의 문화생활을 재개하며

11월 예술의 전당 나들이 계획

 
니콜라이 루간스키

🎹 프로그램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 네 개의 회화적 연습곡, Op. 33 | 4 Etudes-tableaux, Op. 33
 II. Allegro - IV. Moderato - V. Non allegro - Presto - VII. Moderato
 - 두 개의 회화적 연습곡, Op. 39 | 2 Etudes-tableaux, Op. 39
 VI. Allegro - VIII. Allegro
- 여섯 개의 전주곡, Op. 23 | 6 Preludes, Op. 23
I. Largo - VII. Allegro - III. Tempo di minuetto - IX. Presto - IV. Andante Cantabile - V. Alla marcia
 
리하르트 바그너
 - <신들이 황혼> 중 네 개의 장 *루간스키 편곡
 프롤로그: 브륀힐데와 지그프리트의 사랑의 노래
 지그프리트의 라인 여행
 지그프리트의 장송행진곡
 브륀힐데의 희생
 -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 '이졸데의 사랑의 죽음 *리스트 편곡

 

10월 지출이 많아 살짝 고민했는데  
자신의 롤모델 라흐마니노프를 연주하는 데다 무엇보다 프렐류드 Op.23-5 Alla marcia가 있어 가기로 했다. 개인적으로 23-5는 키신, 유자왕, 아슈케나지와 더불어 루간스키 연주를 좋아해서. 애증의 곡이기도 한 게 섣부르게 도전했다가 좌절만을 안겨 준....흐흑. 절대 손이 닿지 않는 다성부와 옥타브 연타, 도약. 내가 미쳤지. 좋아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건 엄연히 다른 것을. 아무튼 23-5도 듣고, <신들의 황혼> 루간스키 편곡이 흥미롭기도 해서 가보기로. 오랜만에 바그너 감상도 덩달아.
 

 

<신들이 황혼> 중 네 개의 장. 지난 5월 스승 타티아나 니콜라예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연주했다. 처음 들었을 땐 절절하고 웅장한 감정이 잘 안 와닿더니만 들을수록 격정이 느껴진다. 기대감 상승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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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프게니 키신

더 나이 들기 전에 키신을 많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키신도 50이 넘었다. 물론 아직 정정(?)하고 은퇴 따위는 먼 이야기지만 내가 찾아갈 힘이 없어...... 그러니 올 때 가야 한다. 

🎹 프로그램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7번
쇼팽 녹턴 Op. 48-2
 쇼팽 환상곡 Op. 49
브람스 4개의 발라드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소나타 2번

 

내면의 투쟁, 죽음, 우울과 낭만의 색채로 상상력을 자극하는 프로그램. 프로코피예프와 베토벤 소나타 맘에 들고, 섬세한 구성이란 건 알겠는데
퇴근 후 가면 왠지 졸 것 같은 프로그램이다........... 브람스 발라드, 특히 위험하다. 자다 깨다 할 수도... 사실 프로코피예프도 위태롭고....... 그냥 베토벤 이후로 다........ 자리도 앞이라 만약 잠 오면 혀라도 깨물어야 할 판이다. 
 
앞자리긴 해도 손은 안 보일건데, 난 손보다는 발이 더 보고 싶으니 괜찮다(고 애써 위안). 페달링하는 거 잘 보고 싶다. 손이야 유튜브로 보면 되지만 패달링은 어디서 제대로 볼 수도 없지 않나. 발의 움직임, 스케일에 따른 몸의 힘 분산(?) 이런 신체의 움직임이 난 더 궁금해. 피아노는 손가락이 아닌 온몸으로, 체력으로 연주하는 악기임을 뼈저리게 느끼는 요즘이라. 그리고 얼굴 잘 보이니 됐다.... 키신은 어릴 적 영상이 많아서 그런지 장년의 얼굴에도 아이 적 수줍+어색한 표정이 종종 겹친다. 본인 말처럼 피아노 안 쳤으면 뭘 했을까 싶은 키신. 온몸으로 연주하며 이번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제발 졸지 말아야 하는데).
 

 

악보가 있어 감상에 도움이 된다(부점의 압박......)

 

쇼팽 환상곡 Op. 49 키신, 아슈케나지, 폴리니, 루빈스타인, 미켈란젤리, 지메르만, 모라베츠, 루간스키 등등. 연주자별 감상이 간단히 적혀있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7번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단 세 마디로 알게 해 준 소콜로프의 연주. 키신의 연주도 기대하지만 소콜로프의 연주가 내게는 영원히 최고일 듯. 키신 미안. 

 
 

 

아슈케나지 연주도 상당히 좋다. 내가 느끼는 "너무 빠르지 않게 노래하듯이"가 소콜로프, 아슈케나지 연주인 듯. 소콜로프는 손놀림마저 노래하는 것 같다. 코롤리오프도 좋다. 빌헬름 켐프가 연상되는 정갈한 연주. 
 

 

 

 

힘들어서 더 이상의 링크는 생략하려 했으나,
쇼팽 녹턴 Op. 48-2 피레스 연주. 우아하고 영롱하다.

 

 

 

올해 프로그램은 앙코르곡으로 쇼팽 마주르카 67-4, 프로코피예프 세 개의 오렌지, 브람스 왈츠 39-15 세 곡 정도 하는 듯. 요즘은 마라톤 앙코르를 하지 않는 키신이라 일단 위의 세 곡 기대하고 가야겠다. 

이야기의 겹이 풍부한 프로그램인데 서정적이라 조는 것을 당연하게.... 쓴 것 같다. 키신 미안합니다. (대놓고 졸릴 것 같다고 했지만) 브람스 발라드, 특히 1번을 어떤 마음을 담아 연주할지 상상력이 발동한다. 1번은 '에드워드 발라드'라고 불리는데 낭만파 시인 헤르더가 쓴 <모든 민족의 소리> 중 스코틀랜드의 발라드 ‘에드워드’에서 영감을 받았다. 아버지를 죽인 아들과 이를 추궁하는 어머니의 비통한 대화로 흔히 떠올리는 발라드하고는 거리가 멀다. 
 

브람스 에드워드 발라드, 섬세함 속 강단이 돋보이는 미켈란젤리 연주.

 

 

 

시적이면서 그만큼의 고독과 외로움이 스미는 곡들로 현재 키신의 음악적 사회적 성찰을 가늠해 본다. <The Gift of Music> 다큐에서 청년 키신은 (기억 왜곡 주의) 자신의 17살 때 연주를 두고 천부적 재능에도 어떤 변화는 필요하고 그 변화는 언제 무엇을 어떻게 바꿀지에 달렸다는, 어느 러시아 평론가의 비평을 언급한다. 대중을 만족시키는 연주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여러 시도를 해보고 싶다고. 키신은 늘 자기만의 예술 세계를 다른 층위로 그려온 것 같다. 피아노밖에 모를 것 같은데 시 낭송에도 진심이고 연극도 한 것 같고. 어딘지 덕(후)스러운 면이 있는 건 사실. 진짜 virtuoso 맞네.

50이 넘은 지금도 천재 피아니스트라는 수식어가 붙고, 인터뷰에서 항상 언급되는 게 신동child prodigy 이야기인데 그만큼 어린 시절 키신의 임팩트는 강렬했다. 세상 초월한 듯, 조금은 무심하게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하는 곱슬머리 소년. 13살 키신은 피아노 천사였다. 그리고 BBC 프롬스, 프랑스 오랑주 공연 등등 직접 보지 못한 게 한이 될 정도로 천재의 아우라는 대단했다. 키신은 신동으로, 쇼맨으로 푸시를 받고 그만큼 소비되면서도 이를 넘어서야 한다는 요구를 받아 왔다. 테크닉만 있지 개성이 없다, 기계 같다는 흔한 비판은 천재=테크닉을 전제로 '초천재'의 아우라를 기대하는 방증이다.  

하지만 감정은 없다가 생기는 것도, 쓰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키메라 같은 것이다. 키신 자신도 (기억 왜곡 다시 주의) 나이 든 지금이 쇼팽을 더 '잘 친다'고 할 순 없다고 했다. 천재가 초천재, 그러니까 '거장'으로 거듭나는 건 모두 바라는 바다. 천재적인 연주를 현란한 테크닉으로만 접근하면 초천재 역시 초테크닉일 뿐. 13살 키신과 이후 그가 녹여내 온 쇼팽은 한 사람의 서로 다른 표정이다. 50대에 들려주는 브람스, 베토벤, 프로코피예프는 어떤 얼굴을 할까. 
 
내가 키신을 좋아하는 이유는 정직한 연주 속 수줍게 내비치는 열정과 자신감 때문이다. 그 정직함이 때론 무미한 열정, 차가운 정열처럼 들리지만 그 모든 게 키신의 색깔인걸. 그의 캔버스 채색은 끝나지 않았다. 욕심 많은 이 양반,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이 세상 모든 곡을 연주하려면 오래 살아야 한단다. 키신이 말하니 왠지 빈말이 아닌 것 같아. 나이 들기 전 키신을 많이 봐야겠다는 생각은 신동 시절과 멀어지는 것에 대한 내 미련일지도. 이번엔 '피아니스트' 예프게니 키신의 연주를 온전히 감상해야지. 키신은 이미 큰 선물을 줬다. 그러니 하고 싶은 것 다 하세요. 본인의 색채를 그리고, 사회적 목소리를 내고, 글도 쓰고, 시도 쓰고, 작곡도, 연극도 사랑도 뭐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