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 Vanishing Kings — 사막에 라이온 킹이 산다

NAT GEO WILD에서 사자 무리와 물소떼의 대결을 본적이 있다. 역시 쪽수엔 당할 재간이 없다는 진리를 새삼 절감. 몇 차례 사냥 시도에서 꼴사납게 패퇴를 거듭한 사자 군단은 치밀한 전략하에 결국 홀로 풀을 냠냠하던 수컷 물소를 덮치는데 성공한다. 수사자까지 합세한, 말 그대로 사자떼의 맹공으로 물소는 울부짖는다. 이 소리에 물소 동료들이 결집하여 사자들을 몰아내려 하지만 이미 세가 기울어서인지 물러나 버린다. 8~9마리 사자가 물소에 들러붙어 총력을 퍼붓고 마침내 물소는 쓰러지고 만다. 아, 이젠 영락없이 먹히는구나 하는데 동료를 구하러 다시 몰려온 물소떼! 결국, 사자 무리는 또 줄행랑 치고 만다. 공격당했던 물소는 동료들과 함께 이내 드넓은 초원으로 향하고... 물소의 동료애가 정말 대단하고 멋지다는 생각 밖에는. 세렝게티는 이렇게 영화보다 더 극적이다. 

뭐 체면을 구기긴 했지만 '사자'하면 (밀림에 살지도 않는데) '밀림의 왕'으로 불리며, 드넓은 세렝게티 초원을 지배하는 거대 프라이드가 떠오른다. 합심하여 사냥하는 암사자 무리, 그 주위를 얼쩡대다 수사자에 쫄아서 도망치는 하이에나, 거한 식사 후 얼굴에 파리떼가 덕지덕지 붙은 채 한낮에 늘어져서 헥헥거리는 모습도 익숙하다. 독고다이 호랑이나 다른 고양잇과 맹수와 달리, 사자는 '떼' 이미지가 강하다. 저 넓은 초원에 군림하는. 

사막여우, 사막늑대는 들어봤어도 '사막사자(Desert Lion)'는 들어 본 일이 없다. 코뿔소도 동남아 밀림에 사는데(거의 멸종 직전이지만), 사자라고 사막에 살지 못할까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사막에 사자가 살고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정말 '밀림의 왕'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도 모르게.

나미브 5총사 The Five Musketeers

source: natgeo channel 

<Vanishing Kings: Lions of the Namib>는 자비라곤 없는 나미브 사막에서 살아가는 사자 프라이드 이야기다. 아프리카 초원과 비교하면 프라이드라고 부르기도 뭣할 정도로 참 단출하다. 17살 암사자 '퀸'이 리더로, 젊은 암사자 2마리와 어린 수컷 5마리가 전부다. 암사자 3마리는 아직 철없는 5총사를 헌신적으로 보살핀다. 7살 된 마지막 수컷이 농부에게 사살되면서 5총사에게 나미브 사자의 미래가 달려있다. 

세렝게티도 가뭄이 오면 척박하거늘 작열하는 태양 아래 끝없이 펼쳐진 모래 언덕에서 사냥한다는 건 그야말로 극한 직업이 아닐 수 없다. 5총사의 훈육을 책임지며 열과 성을 다해 프라이드를 이끌던 노련한 퀸은 기린 사냥에서 상처를 입고 무리에서 뒤처진다. 홀로 남아 몇 주를 먹지 못하고, 마지막 힘을 다해 두 딸을 불러보지만 돌아오는 건 바람 소리 뿐. 사막의 여왕은 서서히 생을 마감하고, 숨이 채 꺼지기도 전에 모래바람이 몸을 덮는다. 사막은 너무 황량하다. 

필립 스탠더 박사(Dr. Philip Stander)는 17년을 봐온 퀸의 얼굴을 쓰다듬고 마지막으로 자신이 채워줬던 GPS를 풀어준다. 평생을 지켜본 사자의 죽음을 대하는 심정이 어떨까. 철저하게 거리를 두고 관찰하는 입장이 맞지만 이런 경우 뭐라도 손을 '써 볼 순' 없었던 걸까라는 생각이 안 날 수 없다. 하지만 자연의 섭리를 받아들여야 한다. 사막에서 사자로 태어나 사자답게 살다 모래로 돌아가는 모습. 가슴 아리는 장면이지만 한편으론 아름답기도 하다.

나미브 5총사는 어느덧 어미에게서 독립한다. 엄밀히 말하면 어미가 떠난 거지만. 끈끈한 유대로 마침내 기린 사냥에도 성공하며 나미브 사막에 왕의 귀환을 알린다. 영화는 이렇게 희망을 안고 마무리된다. 

하지만, 

나미브 5총사 중 현재 단 1마리 만이 살아있다. 감독을 주축으로 '사막사자 보호재단'(www.desertlion.org)을 만들고 주민의 안전과 재산 보호, 교육 등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4마리가 human-lion conflict로 사살됐다. 이 중 3마리는 독살됐다. 5총사를 마을에서 떨어진 안전한 곳으로 막 이송하려던 터라 더 안타깝다. 빈부 격차가 극과 극을 달리는 나미비아에서 가축이 유일한 생계 수단인 주민과 배고픈 사자가 공존하는 건 제로섬 게임일 뿐이다. 남은 한 마리는 즉시 이송됐고 2016년 9월 4일 현재 마지막 수사자 Tullamore가 잘 있다는 게 확인되었다. 

필립 박사는 'The Desert Lion Trust'라는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집도, 사무실도 없이 랜드크루저 한 대로 20년 넘게 혼자 나미브 사막에서 사자를 관찰하며 보호에 힘쓰고 있다. 변변하게 펀드를 받는 것도 아니고 당연히 수입도 없다. 멸종 위기종에 대한 지원이 중국처럼 국가 차원이 아니면 배곯으며 하는 건 마찬가진가 보다. 수마트라 코뿔소팀은 그나마 나아 보일 지경이다.

영화팀은 제작 기간 5년 중 2년 반을 퀸 프라이드와 함께했다. 그늘 하나 없는 모래 언덕 위. 나미브 사자의 삶에서 시베리아 호랑이의 서늘함이 보인다. 

인간이 동물임을 잊지 말고, 생물학적 표본으로 본성에 순응해야 한다는 데즈먼드 모리스의 얘기가 떠오른다. 웅대한 사상과 오만한 자부심을 버리고.

Vanishing Kings: Desert Lions of Namib

Genre: Documentary

Director: Will & Lianne Steenkamp

Year of production: 2015

Running time: 52 minutes

Country of origin: Austr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