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악스 — 풍뎅이, 날아오르다

평범한 문방구 영업사원으로 아내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전전긍긍하는 공처가. 아들에게조차 동정 어린 시선을 받는 세상 소심한 그의 정체는 '의사'의 중계로 일하는 일급 살인 청부업자! 코드네임 풍뎅이.

킬러이자 아버지, 남편인 풍뎅이의 고군분투로 이사카 고타로의 '킬러 삼부작'은 막을 내린다. <그래스호퍼>, <마리아비틀>에 이어 <악스>에서도 작가의 블랙 유머는 여전하다. 아이러니는 한 겹 짙어졌다. 

 

 

그래스호퍼

마리아비틀

악스

 

 

본투비 공처가인 풍뎅이는 아들 가쓰미가 커갈수록 '퇴원'의 의지도 커진다. 의사 선생은 병원의 수지 타산을 계산하며 풍뎅이의 퇴원에 자꾸 조건을 붙인다. 가쓰미도 어느덧 고등학생이다. 꼬마 가쓰미에게 읽어 주던 권선징악의 동화가 자꾸 생각난다. 풍뎅이는 과연 퇴원의 바람을 이룰 수 있을까?

 

 

 

📖

"자살하는 인간은 딱 질색이야.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죽음을 택하는 건 인간뿐이거든. 그거 건방진 짓 아닌가? 아무리 힘든 환경에 처해도 동물은 스스로 죽진 않아. 지들이 살아남기 위해 다른 동물들이 얼마나 희생했는지 알기 때문이지. 오만하기 짝이 없는 인간들. 그래서, 난 단지 몸을 날리는 거야. 죽는 건 그 결과일 뿐이지."

 

<그래스호퍼> 중에서, 이와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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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나노무라 씨가 나타난 순간 내가 뭘 해야 할지 전부 다 알았어요. 이봐, 이걸로 전부 끝이야. 알지?" 마지막 말은 나노무라의 마이크에 대고, 그 너머에 있을 의사에게 한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정말이지." 하고 자연스럽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작전 같은 건 다 그림의 떡이었네."
"대비책도 준비해 놨어요?"
"그쪽 떡도 그림으로 끝났어요."

 

<악스> 중에서, 풍뎅이

 

 

 

삼부작이 수미상관인 느낌이 드는 건 같은 세계관이니 당연한지도. 쿨시크한 맨션 관리인이 혹시 마리아비틀의 기무라 할아버지인가 했는데 (아쉽게도) 아니었다. 풍뎅이가 원했던 귀 어둡고 일 처리가 야무지지 못한, 무해하고 허약한 노인 관리인이 아니어서 그림의 떡은 그림으로 남지 않았다. 

 

곤충 풍뎅이의 영어 지칭 중 비틀 beetle이 있다. 두 번째 작품인 <마리아비틀>에서 마리아가 빠졌다고도 볼 수 있다. (불)운의 여신에게 사랑받는 나나오가 '마리아비틀'이라면 풍뎅이는 마이너스 채점표를 등에 지고 날아오르는 '비틀'이다. 그 모습을 본 사람은 자신의 점수도 함께 날아갔다는 것을 알았다. 

 

 

 

📖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새롭게 마음을 고쳐먹고,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다 이건가." 나는 겨우 그렇게 말했다.
"물론 사회 자체도 그럴 테지만, 당신들 같은 인간은 역시 무리야. 마이너스 백 점 정도라면 어떻게 해 볼 수 있다 해도, 마이너스 5만 점 정도는 될 거잖아?"
"마이너스 5만 점." 채점하는 것만 해도 힘들겠다. "리셋은 무리인가!"
"역시 화나지?"
누가, 하고는 묻지 않았다.

 

<악스> 중에서, 풍뎅이와 복숭아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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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님의 일곱 가지 슬픔을 등에 지고 날아간다. 그래서 무당벌레는 레이디비틀이라고 불린다.
일곱 가지 슬픔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지 나팔꽃은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 작은 벌레가 세상의 슬픔을 검은 반점으로 바꾸어 선명한 붉은 등에 살포시 싣고, 잎이나 꽃의 툭 불거진 끄트머리까지 올라간다는 얘기를 듣고 보니, 그런 야무진 기운이 느껴지기도 했다. 무당벌레는 더 이상 높이 올라갈 수 없다고 느끼는 데까지 올라가면, 각오를 다지려는지 동작을 멈춘다. 호흡을 한 번 멈춘 후, 빨간 겉껍질을 활짝 펼치고, 곧게 뻗은 날개를 파닥거리며 날아간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은, 그 검은 반점만큼 작기는 하지만, 자기의 슬픔을 그 벌레가 덜어줬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마리아비틀> 중에서, 나팔꽃

 

 

 

 

<그래스호퍼>와 <마리아비틀>은 별난 킬러들의 생태계를 왁자지껄 풍자한다. 중심 캐릭터는 있지만 온갖 곤충, 동식물, 과일 무리가 우르르 왔다 사라진다. <악스>에서 핀 라이트는 풍뎅이를 향한다. 업계 최고 실력자인 것이 무색하게 공처가, 다정한 아버지 풍뎅이에겐 가족이 세상 전부다. 사교성도 별로고 친구도 — 있을 뻔했지만 — 없다. 의사에게 최후통첩을 날린 후 이젠 '수술' 대상이 되어 위험한 사건에 휘말리지만 오히려 축복받은 나날들 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기왕 한 번 사는 건데, 죽은 듯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그럼 집사람한테 미안하잖아요."

 

 

<그래스호퍼>의 스츠키의 말은 풍뎅이의 마지막 용기와 다르지 않다. 풍뎅이의 비상으로『킬러 삼부작』의 막이 내린다. 현대의 우화로 유쾌하게 그린 덕에 살인자의 고뇌에서 삶의 부조리를 본다. 삼부작 모두, 킬러든 아니든, 이사카 고타로의 메시지는 한결같다. 기왕 인생이라는 열차에 올라탔으니 죽은 듯 살지 말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미안하지 않게 '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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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스> 후반부 밀감과 "멜론"은 오타겠지? 멜론이 따로 있었나? (가물가물) 그나저나 복숭아는 트라우마 생긴 거 아닌지 모르겠네. 매미, 밀감, 레몬에 풍뎅이까지.